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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보이아 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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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보이아 백국은 9세기 중반부터 존재했던 국가로, 현재의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지역에 걸쳐 있었다. 1003년 움베르토 1세가 백작으로 임명된 이후 사보이아 가문이 독립을 유지하며 영토를 확장했다. 1416년 신성 로마 황제 지기스문트에 의해 공국으로 승격되었고, 이후 사보이아 공국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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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보이아 백국 - [옛 나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공식 명칭라틴어: Comitatus Sabaudiae
일반 명칭사보이아 백국
국가 형태군주국
종교로마 가톨릭교
정치 체제백국
국가신성 로마 제국
국기
제국 깃발
황제에 대한 충성을 증명하기 위해 최초의 백작들이 사용한 제국 깃발
사보이아 가문의 문장
사보이아 가문의 문장
지도
1250년경 사보이아 백국 위치 지도
13세기 중반경 신성 로마 제국 내 사보이아 백국과 영토 (#d40000). #fefee9 영역은 부르군트 왕국의 나머지 지역을 강조 표시함. 사보이아 영토 중 일부는 왕국 외부에 위치 (이탈리아 왕국)했음에 유의. 사보이아 본토는 영토의 가장 서쪽 지역임. 사보이아 본토 바로 북서쪽에 있는 표시되지 않은 영토인 브레스는 1272년에 획득.
역사
시작1003년
설립 계기부르군트 왕 루돌프 3세에 의해 창설
주요 사건토리노 변경백령 상속 (1046년)
하인리히 7세 황제가 제국 직할령으로 인정 (1331년)
니스 백국 획득 (1388년)
제네바 백국 획득 (1401년)
종료1416년
소멸 계기지기스문트에 의해 사보이아 공국으로 승격
정치
정치 체제군주제
수도샹베리 (1295년부터)
통치자 칭호사보이아 백작
주요 통치자움베르토 1세 (1003년–1048년)
아메데오 8세 (1391년–1416년)
선행 국가아를 왕국
후계 국가사보이아 공국
기타
언어피에몬테어, 라틴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프로방스어
참고백국이 종주권을 가졌던 부르군트-아를 왕국은 1032년 루돌프 3세 사후 제국의 일부가 됨. 사보이아 백국은 1331년 하인리히 7세 황제로부터 제국 직할령 지위를 얻음.

2. 역사

사보이아 가문의 시조인 움베르토 1세는 1003년 부르고뉴의 루돌프 3세에 의해 백작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신성 로마 황제 헨리 2세의 상속 청구를 지지했고, 그 대가로 주교들로부터 아오스타 백작령을 빼앗을 수 있었다. 루돌프 3세 사후, 신성 로마 황제 콘라드 2세를 지원하여 모리엔느 백작령, 샤블레, 타랑테즈의 영토도 받았다.[2]

아를 왕국신성 로마 제국의 명목상 왕국으로 남아 있었지만, 움베르토의 후손들(사보이아 가문)은 백작으로서 독립을 유지했다. 1046년, 그의 막내아들 오토는 아델라이데와 결혼하여 광대한 투린 변경백국을 장악했고, 이는 그의 형에게서 상속받은 사보이아와 합쳐졌다.[3]

백작들은 1218년 멸망한 차링겐 가문으로부터 제네바 호수 북쪽의 보주 땅을 상속받으면서 영토를 더욱 확장했다. 1220년, 토마스 1세 백작은 피네롤로와 샹베리 도시를 점령했는데, 이후 샹베리가 사보이아의 수도가 되었다.

1313년, 아마데우스 5세는 황제 헨리 7세로부터 공식적으로 제국 직속령 지위를 얻었다. 1349년 도피네가 미래의 프랑스 왕 샤를 5세에게 넘어가고, 1365년 사보이아의 아마데우스 6세가 황제 카를 4세에 의해 아를의 제국 총독으로 임명된 후, 부르고뉴 왕국의 잔존물은 황제의 권위 아래 있지 않게 되었다.[4]

아마데우스 7세는 1388년 니스 백작령을 획득하여 지중해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그의 아들 아마데우스 8세는 1401년 제네바 백작령을 매입했다. 확장된 사보이아 영토는 1416년 독일 왕 지기스문트에 의해 공국으로 승격되었다.[4]

2. 1. 기원

사보이 백작의 초기 문장


사파우디아는 9세기 중반부터 보소니드 공작 후크베르트가 통치하던 상부르고뉴의 일부였다. 933년에는 부르고뉴의 루돌프 2세 치하의 더 큰 부르고뉴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2]

흰손의 움베르토는 1003년 마지막 부르고뉴의 왕 루돌프 3세에 의해 백작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신성 로마 황제 헨리 2세의 상속 청구를 지지했고, 그 대가로 주교들로부터 아오스타 백작령을 빼앗을 수 있었다. 루돌프 사후 콘라드 2세를 지원하여 모리엔느 백작령, 샤블레, 타랑테즈의 영토도 받았다.[2]

아를 왕국신성 로마 제국의 명목상 왕국으로 남아 있었지만, 움베르토의 후손들(사보이아 가문)은 백작으로서 독립을 유지했다. 1046년 그의 막내아들 오토는 아델라이데와 결혼하여 광대한 투린 변경백국을 장악하게 되었고, 이것은 그의 형으로부터 상속받은 사보이와 합쳐졌다.[3]

샹베리 성


백작들은 1218년 멸망한 차링겐 가문으로부터 제네바 호수 북쪽의 보주 땅을 상속받으면서 영토를 더욱 확장했다. 1220년 토마스 1세 백작은 피네롤로와 샹베리(`Kamrach`) 도시를 점령했는데, 이후 샹베리가 사보이아의 수도가 되었다.

1313년 아마데우스 5세 대왕은 황제 헨리 7세로부터 공식적으로 제국 직속령 지위를 얻었다. 1349년 도피네가 프랑스 왕 샤를 5세에게 넘어가고, 1365년 사보이아의 아마데우스 6세가 황제 카를 4세에 의해 아를의 제국 총독으로 임명된 후, 부르고뉴 왕국의 잔존물은 황제의 권위 아래 있지 않게 되었다.[4]

아마데우스 7세는 1388년 니스 백작령을 획득하여 지중해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그의 아들 아마데우스 8세는 1401년 제네바 백작령을 매입했다. 확장된 사보이아 영토는 1416년 독일 왕 지기스문트에 의해 공국으로 승격되었다.[4]

사보이아 가문의 시조로 여겨지는 움베르토 비안카마노는 1003년 문서에서 이 지역의 "백작"으로 처음 언급되었다.

1032년 부르고뉴 왕국 붕괴로 움베르토 비안카마노는 콘라트 2세를 도와 모리엔느와 사보이아 백작의 칭호를 받고, 이제르 계곡의 모리엔느 영토와 독일 황제의 상징인 독수리 문장 사용 허가를 얻었다.

1046년 아들 오도네와 아델라이데와의 결혼을 통해 피에몬테와 인연을 맺었다. 이 결합으로 수사 지역과 토리노 변경백령을 얻었다.

오도네 1세를 계승한 것은 아메데오 2세와 피에트로 1세였는데, 어머니 아델라이데가 사망할 때까지 백작령을 관리했다.

움베르토 2세와 아메데오 3세가 뒤를 이었지만, 아메데오 3세는 오토콩브 수도원을 건립하고 십자군에서 돌아오는 길에 페스트로 사망했다.

아들 움베르토 3세의 뒤를 이은 톰마소 1세는 프리드리히 2세에 의해 황제 대리로 임명되고, 피에몬테 영토를 회복하고 알프스 너머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톰마소 1세가 죽자 가문 내에서 잠시 대립이 있었고, 재산을 분할하게 되었다. 아메데오 4세가 사보이아 백작의 칭호와 직할지 대부분을 계승하고, 톰마소 2세는 아비리아나 등 피에몬테 영토를 얻어 피에몬테 공작(프린치페)의 칭호를 얻었다.

아메데오 4세의 아들 보니파치오를 계승한 것은 그의 삼촌들인 피에트로 2세와 필리포 1세였다.

1285년 필리포 1세가 사망한 후, 사보이아 백작령은 10년간의 계승권 분쟁에 휘말렸다. 백작의 칭호와 영토 대부분은 필리포 1세의 조카 아메데오 5세가 획득했고, 아메데오의 동생 루도비코는 의 북동 지역을, 필리포(아메데오 5세의 형 톰마소 3세의 아들)는 피에몬테의 땅을 할당받았다.

아메데오 5세를 계승한 것은 두 아들 에도아르도와 아이모네였으며, 아이모네는 아들 아메데오 6세에게 백작위를 남겼다. 아메데오 6세는 비엘라, 쿠네오, 산티아를 획득하고 를 통합했다. 아들 아메데오 7세는 니스를 획득하여 사보이아 백작령을 확장했다. 그의 아들 아메데오 8세는 황제 지기스문트에 의해 공작으로 승작되었다.

2. 2. 발전과 확장

흰손의 움베르토는 1003년 루돌프 3세에 의해 백작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신성 로마 황제 헨리 2세의 상속을 지지했고, 그 대가로 주교들로부터 아오스타 백작령을 빼앗았다. 루돌프 사후 콘라드 2세를 지원하여 모리엔느 백작령과 샤블레 및 타랑테즈의 영토도 받았다.[2]

사보이아 가문은 백작으로서 독립을 유지했다. 1046년 오토는 울릭 만프레드 2세의 딸인 아델라이데와 결혼하여 투린 변경백국을 장악, 사보이아와 합쳤다.[3]

백작들은 1218년 멸망한 차링겐 가문으로부터 제네바 호수 북쪽의 보주 땅을 상속받으면서 영토를 더욱 확장했다. 1220년 토마스 1세 백작은 피네롤로와 샹베리(''Kamrach'') 도시를 점령했는데, 이후 샹베리는 사보이아의 수도가 되었다. 1240년 그의 막내아들 피터 2세는 잉글랜드에 가서 5개 항구의 수호령과 리치먼드 백작으로 임명되었고 런던에 사보이 궁전을 세웠다.

1313년 아마데우스 5세는 황제 헨리 7세로부터 공식적으로 제국 직속령 지위를 얻었다. 1365년 사보이아의 아마데우스 6세가 황제 카를 4세에 의해 아를의 제국 총독으로 임명되었다.[4]

아마데우스 7세는 1388년 니스 백작령을 획득하여 지중해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그의 아들 아마데우스 8세는 1401년 제네바 백작령을 매입했다. 확장된 사보이아 영토는 1416년 지기스문트에 의해 공국으로 승격되었다.[4]

1032년 부르고뉴 왕국 붕괴로 움베르토 비안카마노는 콘라트 2세를 도와 모리엔느와 사보이아 백작의 칭호를 받고, 이제르 계곡의 모리엔느 영토와 독일 황제의 상징인 독수리 문장 사용 허가를 얻었다.

1046년 아들 오도네와 아델라이데와의 결혼을 통해 수사 지역과 토리노 변경백령을 얻었다.

아메데오 2세와 피에트로 1세가 오도네 1세를 계승하였고, 움베르토 2세와 아메데오 3세가 뒤를 이었다. 아메데오 3세는 오토콩브 수도원을 건립하고 십자군에서 돌아오는 길에 페스트로 사망했다.

톰마소 1세는 프리드리히 2세에 의해 황제 대리로 임명되고(1225년), 피에몬테 영토를 회복하고 알프스 너머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톰마소 1세가 죽자 가문 내에서 잠시 대립이 있었다. 아메데오 4세가 사보이아 백작의 칭호와 직할지 대부분을 계승하고, 톰마소 2세는 아비리아나 등 피에몬테 영토를 얻어 피에몬테 공작(프린치페)의 칭호를 얻었다.

아메데오 4세의 아들 보니파치오를 계승한 것은 그의 삼촌들인 피에트로 2세, 그리고 필리포 1세였다.

1285년 필리포 1세가 죽은 후, 사보이아 백작령은 10년간의 계승권 분쟁에 휘말렸다. 아메데오 5세가 백작의 칭호와 영토의 대부분을 획득했고, 아메데오의 동생 루도비코는 의 북동 지역을, 필리포는 피에몬테의 땅을 할당받았다.

아메데오 5세를 계승한 것은 두 아들 에도아르도와 아이모네였으며, 아이모네가 아들 아메데오 6세에게 백작위를 남겼다. 아메데오 6세는 비엘라, 쿠네오, 산티아를 획득하고 를 통합했다. 아들 아메데오 7세는 "붉은 백작"(Conte Rosso)으로 불리며 니스를 획득하여 사보이아 백작령을 확장했다. 그의 아들, 아메데오 8세는 황제 지기스문트에 의해 공작으로 승작되었다.

2. 3. 사보이아 공국으로의 승격

1388년 아마데우스 7세는 니스 백작령을 획득하여 지중해로 영토를 확장했고, 그의 아들 아마데우스 8세는 1401년 제네바 백작령을 매입했다.[4] 1416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지기스문트는 확장된 사보이아 영토를 공국으로 승격시켰다.(사보이아 공국 1416~1718 참조).[4] 이후, 19대 사보이아 백작 아메데오 8세는 황제 지기스문트에 의해 공작으로 승작되었다.

3. 역대 사보이아 백작

사보이아 가문의 시조 움베르토 비안카마노는 1003년 문서에서 "백작"으로 처음 언급되었다.[1]

1032년 부르고뉴 왕국 붕괴 후, 움베르토 비안카마노는 로마 황제 콘라트 2세를 도와 모리엔느와 사보이아 백작 칭호를 받았다.[2] 그는 이제르 계곡의 모리엔느 영토와 독일 황제의 상징인 독수리 문장 사용 허가를 얻었다.[2] 이 지역은 아르크(Arc) 계곡을 따라 몽멜리앙에서 샹베리, 몽세니지오에 이르는 부르제 호(가문의 묘가 오토콩브 수도원에 건설됨)와 레만호 연안, 론강 유역에 자리 잡고 있었다.[2]

1046년, 움베르토 1세는 아들 오도네(1010년-1060년)와 토리노 변경백 오르델리코 망프레디 2세의 딸 아델라이데의 결혼을 통해 피에몬테와 인연을 맺었다.[3] 이 결혼으로 수사 지역과 토리노 변경백령을 얻게 되었다.[3]

오도네 1세의 뒤를 이어 아메데오 2세(1048년-1078년)와 피에트로 1세(1048년-1080년)가 백작위를 계승했으나, 어머니 아델라이데가 사망할 때까지 백작령을 관리했다.[4]

이후 움베르토 2세(1070년-1103년)와 아메데오 3세(1095년-1148년)가 백작위를 이었다. 아메데오 3세는 오토콩브 수도원을 건립하고 십자군에서 돌아오는 길에 페스트로 사망했다.

톰마소 1세(1177년-1233년)는 프리드리히 2세에 의해 황제 대리로 임명되어(1225년) 피에몬테 영토를 회복하고 알프스 너머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톰마소 1세 사후 가문 내 분쟁으로 재산이 분할되었다. 아메데오 4세(1197년-1253년)가 사보이아 백작 칭호와 직할지 대부분을, 톰마소 2세는 아비리아나 등 피에몬테 영토를 얻어 피에몬테 공작(프린치페) 칭호를 얻었다.

아메데오 4세의 아들 보니파치오를 계승한 것은 그의 삼촌들인 피에트로 2세와 필리포 1세였다.

1285년 필리포 1세 사망 후, 사보이아 백작령은 10년간의 계승권 분쟁에 휘말렸다. 알프스 상업로를 장악한 필리포 1세의 조카 아메데오 5세(1249년-1323년)가 백작 칭호와 영토 대부분을 획득했다.

아메데오 5세의 뒤를 이어 두 아들 에두아르도(1284년-1329년)와 아이모네(1291년-1343년)가 백작위를 계승했으며, 아이모네는 아들 아메데오 6세(1334년-1383년)에게 백작위를 물려주었다. 아메데오 6세는 비엘라, 쿠네오, 산티아를 획득하고 를 통합했다. "붉은 백작"(Conte Rosso)으로 불린 아들 아메데오 7세(1360년-1391년)는 니스를 획득하여 영토를 확장했다. 그의 아들인 19대 사보이아 백작 아메데오 8세(1383년-1451년)는 황제 지기스문트에 의해 공작으로 승작되었다.

사보이아 백작즉위퇴위
움베르토 비안카마노1003년1048년1
아메데오 1세1048년1051년2
오도네1051년1057년3
피에트로 1세1057년1078년4
아메데오 2세1078년1080년5
움베르토 2세1080년1103년6
아메데오 3세1103년1148년7
움베르토 3세1148년1189년8
토마소 1세1189년1233년9
아메데오 4세1233년1253년10
보니파시오1253년1263년11
피에트로 2세1263년1268년12
필리포 1세1268년1285년13
아메데오 5세1285년1323년14
에두아르도1323년1329년15
아이모네1329년1343년16
아메데오 6세1343년1383년17
아메데오 7세1383년1391년18
아메데오 8세1391년1451년19



1416년부터는 사보이아 공국이 되었다.

4. 지리

사보이아 백국의 중심은 샹베리를 수도로 하는 지역이었다. 이탈리아 지역은 피에몬테 서부 산악 지역의 피네롤로를 중심으로 한 발레디수자와 발키조네였다.

참조

[1] 웹사이트 House of Savoy Italian Royal Family, European Dynasty Britannica https://www.britanni[...] 2024-08-07
[2] 웹사이트 Le Comté de Savoie – Musée du patrimoine militaire de Lyon et sa région https://museemilitai[...] 2024-08-07
[3] 웹사이트 Savoie - Petit comté deviendra grand... - Herodote.net https://www.herodote[...] 2024-08-07
[4] 논문 le comté de Savoie https://books.opened[...] Éditions de la Sorbonne 2024-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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